군산만큼이나 일제 강점기의 수탈을 뼈저리게 받은 곳이 있다. 바로 <강경>.
당시 3대 포구 중 하나였고, 시장 또한 아주 크게 번영했으며 강과 들을 완벽하게 끼고 있기 때문에 일제는 강경을 충청도의 본거지처럼 사용했다. 그 결과 현재 강경에는 아직도 일제의 것으로 확실시 되는 것들이 많으며, 그 아픔에서 아직 100%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전라도에는 군산이 있다면 충청도에는 강경이 있다. 최근 들어 강경은 그때의 아픔을 잊지 않고자 근대문화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아직 미흡한 점이 많지만 그 길을 걸어본다.
일제 강점에 맞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을까?
장미 한 송이 핀 것처럼 그들은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갔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을까?
친일파라 불리던 사람들의 후손들은 이 땅 위에서 떵떵 거리며 살고 있는데…
절대 우리는 이들과 그들을 잊으면 안된다.
아무도 훔쳐가지 않을 것을 알기에 대문 밖에다가 말린다.
정과 믿음.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이지.
외관만 보더라도 아주 오래되 보이는 한약방.
내가 사진을 찍고 있으니깐 안에서 주인이 나와 왜 사진을 찍냐며 묻는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뭔가 있어 보여서 찍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지나간다.
어쩌면 그 아저씨는 나에게 이 한약방이 지니고 있는 역사를 알려줄려고 한 것일 수도 있고,
낯선 사람이 와서 사진 찍는 모습에 아저씨 역시 당황했을 수도 있다.
군산과 같은 근대문화거리에 익숙한 나는 기대가 컷다. (실제 그렇다.)
하지만 좀 다르다. 여긴 그냥 시골 풍경(?)
강경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 그 자체이다.
그래서
이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도, 관광객도 볼 수 없다.
이 길을 걷다보면 오래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또는 낡은 것들.
우리집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아주 시골의 풍경이지만, 강경을 온 이상 셔터는 눌러야 한다.
(우리집도 엄청난 시골이다.)
무제란 이름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셔터를 눌렀기 때문이다.
날씨도 안좋은데 밖에다가 빨래를 말리고 계신다.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 같고, 내일이면 눈이 올 것 같은데 말이지.
마르겠어?
분명 얼마전까지는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떠난지 얼마 안되보이는 한 낡은 집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자전거가 놓여져 있었고 (어쩌면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을수도?)
문지방은 다 찢어져 있었다.
(아래사진)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강경이 언젠가는 군산이나 전주처럼 뜨는 날에는 이 집도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잘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강경이 되었으면 한다.
골목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끝까지 걸어가봤다. 근데 집이라니..
뭔가 신비한 것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기대감은 허탈함으로 돌아올 때가 많다.
무 꼭다리를 따다가 무시잎과 함께 말린다.
분명 사람이 먹진 않을텐데, 어이다가 쓰실련지 궁금하다. 우리집도 옛날에는 이렇게 무를 자르고 남은 꼭다리를 말리곤 했다.
내 기억으로는 소 여물로 던져주었던 것 같은데(?)
이걸 참고하면 강경여행에 대해서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다. 강경이 얼마나 많은 일제 풍경을 남겼는지.
기차타고 강경
#3-근대문화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