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의사기념관 입구에서 환하게 반겨주는 듯한 충남 예산의 마스코트가 눈에 띕니다.
다른 지역에서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예산의 특산품인 황토 사과를 기억하게 하는 홍보 효과가 보기 좋습니다.
기념관 안에는 윤봉길 의사 퍼즐 맞추기와 포토존들이 구성되어 아이들도 쉽게 윤봉길의사에 관심을 두게 될 것 같습니다. 또한, 포토존은 친구들과 추억을 만드는 동시에 윤봉길 의사를 마음으로 더 기릴 수 있는 장소가 되겠네요.
매헌 윤봉길 의사는 1908년도에 충남 예산군 덕산면 출생이며, 윤황 공과 김원상 여사의 장남으로 출생하셨습니다. 또한, 여러 시집을 엮으시며 부흥을 건립하여 농촌부흥운동을 주도하셨습니다. '장부출가생불환' (丈夫出家生不還) 사내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라는 굳은 다짐이 보이는 글을 남기시고 1930년에 망명하셨습니다. 그 바로 다음 해에 중국 상하이에 도착하여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조국 독립운동에 헌신할 큰 뜻을 피력하셨습니다. 1932년에 한인 애국단에 입단하시고 4.29 홍커우공원 의거 결행을 하신 뒤 일본 가나자와 육군 공병작업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살아계시는 동안 좋은 일들을 많이 하셨는데요, 그중 1926년에 야학을 열어 직접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시며 각곡 독서회와 목계구매조합을 조직하여 농민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조국의 발전을 위해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셨다는 점이 제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곳은 소원을 적어 매달아두는 곳인데요, 자신의 소원을 적는 대신에 윤봉길 의사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작은 쪽지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목숨을 바쳐서까지 자신을 희생하여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신 윤봉길 의사 및 모든 독립운동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는 앞으로 그 희생들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려운 한국을 건져낼 집'이란 뜻을 지닌 저한당은 윤봉길 의사께서 4세부터 중국으로 망명할 때까지 민족운동을 하던 곳입니다.
25세 젊은 나이에 순국하신 윤봉길 의사의 동상 앞에 서니 당시 그의 뜨거웠던 가슴과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민족혼을 깨운 윤봉길 의사를 항상 생각하며 인생의 고난들을 이겨내며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