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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20년 전에 그려진 한 폭의 수채화

사립박물관(4)-공세리 성지·성당박물관

2015.01.28(수) 09:42:21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120년전에그려진한폭의수채화 1


프랑스 드비즈 신부
고딕양식으로 건립
 
10시부터 4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 삽교호방조제를 지나자 공세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회관을 지나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바로 공세리성당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이 높이 21m의 느티나무다.
이곳에는 수령 350년이 넘는 국가보호수가 세 그루나 있다. 고딕양식의 성당은 느티나무와 단아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05년 한국관광공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할 만큼 이곳의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다. 보는 지점에 따라, 계절에 따라 이곳의 풍경은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연유로 꼭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공세리 성당은 1890년에 시작돼 120년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성지다.
신앙생활을 하다 순교하신 32분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아산 지방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던 프랑스 출신의 드비즈 신부는 마을의 민가를 교회당으로 사용하다 1897년 옛 곡물창고에 사제관을 세우고 1922년에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본당을 완공했다.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아름답고 한가로운 성당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대부분 공세리 성당의 모습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다.

<태극기 휘날리며>, <에덴의 동쪽>, <사랑과 야망> 등 70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 장소로 활용된 곳이다.

성당이 자리한 1만여 평의 터는 예로부터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창고가 있던 곳이다. 성종 9년(1478년)부터 영조 38년(1762년)까지 근 300년 동안 운영됐다.

공세리 성지·성당박물관은 성당 본당 왼쪽에 위치해 있다.

박물관에는 대전교구 최초의 감실을 비롯한 1500여점의 유물과 공세리 성당 제2대 신부인 드비즈 신부의 유물, 신유~병인박해 때 이 지역 순교자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1, 2층으로 이뤄진 박물관을 둘러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오르듯 공세리성당의 태동과 변천을 살필 수 있다.
전시관은 모두 다섯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방은 ‘탄생의 방’이다.
‘신앙의 못자리’요 ‘순교의 묘자리’인 내포지방은 신앙전파의 중심지이자 요람으로써 초대교회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공세리성당은 고딕식 구조로 봉헌되어진 교회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손꼽힌다.

두 번째 방은 35년 동안 온 생애를 공세리에서 사목하다 선종하신 ‘에밀 드비즈 신부의 방’이다.
‘박해와 순교’ ‘영광의 방’은 순교자들의 방이다. 우리나라 4대 박해(신유, 기해, 병오, 병인)를 통해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는데 대부분이 내포지역에서 나왔다.

아산지역 순교자들은 32명이었으며 이들은 서울과 공주 등으로 끌려가 고문, 옥사, 참수형으로 순교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방은 ‘재창조의 방’이다.

공세리 성지·성당은 순교정신을 토대로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도 늘 세상과 함께 해왔다.
‘사귐’ ‘섬김’ ‘나눔’이라는 예수의 정신을 구현해 왔다. 예수그리스 안에서 상생의 장을 열어 놓은 곳이다.

공세리 성지 성당 박물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하며 미사가 시작되는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는 문을 닫는다.
매주 월요일 휴관이며 무료다.
/김태신 ktx@korea.kr
 
 
 

120년전에그려진한폭의수채화 2



고약을 처음 개발·보급한 곳
 
■ 이명래 고약

 
한때 상처와 종기에 고약만한 약이 없었다. 그 고약이 맨 처음 만들어 보급된 곳이 바로 공세리 성당이다.

1895년 이곳에 부임한 에밀 드비즈(한국명 성일론) 신부님이 프랑스에서 배우고 익힌 방법으로 원료를 구입해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 주게 된다.

그 비법을 당시 신부님을 도와드렸던 이명래(요한)에게 전수하여 ‘이명래 고약’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보급되게 된 것이다.

이명래 고약은 국내 최초의 양약인 활명수와 함께 가장 오래된 장수 의약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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