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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엄숙한 마음으로 유관순 열사 기념관 참배

2013.06.09(일) 10:34:37 | 오선진 (이메일주소:dhtjswls17@hanmail.net
               	dhtjswls1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6월6일 현충일에는 회사 일에 쫓겨 가지 못했다가 어제서야 부랴부랴 유관순 열사 기념관에 가서 참배를 했습니다.

 열사뿐만 아니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시다 순국하신 많은 분들, 위패가 봉안된 추모각에서 감사의 묵념을 드리고 다시금 조국애와 헌신적인 당신의 넋을 추모했습니다.

 유관순 열사, 어떤 설명이나 의미 부여가 더 필요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열사께서는  1902년 3월 15일에 충남 천안군 동면 용두리 (현재의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류중권씨와 어머니 이소제 여사의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열사의 부친께서도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우고 민족 교육운동을 전개하신 분입니다.

열사께서는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한 뒤 1919년 3월 1일 17세 소녀의 몸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고, 일제의 휴교령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그해 3월 13일 독립선언서를 들고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우내장날인 4월 1일 천안, 연기, 청주등에서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과 함께 열사께서 선봉이 되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기념관 정면에 있는 횃불을 상징하는 조형물

▲ 기념관 정면에 있는 횃불을 상징하는 조형물
 

기념관 내에 세워진 유관순열사상

▲ 기념관 내에 세워진 유관순열사상

엄숙한마음으로유관순열사기념관참배 1

▲ 멀리 순국 열사의 추모각이 보입니다
 

추모각으로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돌아 가면 기념관 건립기념기와

▲ 추모각으로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돌아 가면 기념관 건립기념기와 아우내 만세운동을 설명해 주는 기념관이 별도로 마련돼 있습니다
 

잘 조성된 연못이 순국 선열들의 피땀 덕분에 평화로운 오늘날을 살명해 줍니다

▲ 잘 조성된 연못이 순국 선열들의 피땀 덕분에 평화로운 오늘날을 살명해 줍니다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설명기

▲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설명기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당시 순국자 명단. 열사의 부모님도 당시 순국하셨습니다

▲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당시 순국자 명단. 열사의 부모님도 당시 순국하셨습니다
 

열사와 함께 순국하신 분들의 위패를 모신 추모각

▲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중 순국하신 분들의 위패를 모신 추모각
 

순국하신 분들의 위패

▲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하시다가 순국하신 분들의 위패
 

묵념을 드리고 돌아서서 병천 시내쪽을 바라보니 평화로운 모습이...

▲ 묵념을 드리고 돌아서서 병천 시내쪽을 바라보니 평화로운 모습이...
 

순국자 추모각 옆의 유관순 열사 추모각

▲ 순국자 추모각 옆의 유관순 열사 추모각
 

열사의 영정... 다시 묵념....

▲ 열사의 영정. 다시 경건하고 숙엄한 마음으로 묵념....
 

유관순열사에 관한 각종 자료가 전시된 기념관

▲ 유관순열사에 관한 각종 자료가 전시된 기념관
 

기념관 앞의 타임캡슐

▲ 기념관 앞의 타임캡슐
 

열사의 만세운동 활동장면 부조

▲ 열사의 만세운동 활동장면 부조
 

열사의 수형

▲ 열사의 사진과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주요 인물들의 명단
 

열사의 생가 미미어처

▲ 열사의 생가 미니어처
 

만세운동 장면 미니어처

▲ 이화학당 학창시절 열사의 사진
 

열사가 체포된 후 수형기록표

▲ 열사의 이름이 기록된 당시의 호적등본
 

정부가 추서한 열사의 건국훈장

▲ 정부가 추서한 열사의 건국훈장
 

열

▲ 열사의 이화학당 명예졸업장
 

열

▲ 일제가 작성한 열사의 재판 기록문
 

열

▲ 열사가 체포된 후 형무소에 투옥돼 수감된 당시의 체험관
 

체험관 옆의 열사 수감장면 미니어처

▲ 체험관 옆의 열사 수감장면 미니어처
 

체험용 감옥

▲ 체험용 감옥
 

목판 태극기

▲ 목판 태극기
 

형무소에서 끝내 순국하신 후 싸늘한 주검이 되어...

▲ 형무소에서 끝내 순국하신 후 싸늘한 주검이 되어...


 이 시위로 열사의 부모를 비롯해 19명이 순국하였고, 열사도 부상을 입은채 체포되어 공주감옥으로 송치되었습니다.

 열사께서는 "한국인인 내가 왜 일본인에게 재판을 받느냐"며 항거하셨고 거기서 3년형을 받았으나 법정 모독죄까지 덧씌워 7년형을 선고받아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되었습니다.

 하지만 열사께서는 옥중에서도 대한독립만세를 계속 부르시다 일제의 간악한 고문과 폭행으로 1920년 10월 12일 18세의 나이로 순국하셨습니다.

 "나는 죽일 수 있어도 우리나라 독립은 막을 수 없다. 너희들은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다." 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목숨을 거두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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