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부터 연꽃은 '깨달음의 꽃(만다라화)'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 설법을 하다가 제자들에게 연꽃을 보여주자 다른 제자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할 때 석가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가섭만이 그 참 뜻을 깨달아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제자 가섭은 연꽃을 통해 무엇을 알았기에 빙그레 웃었던 것일까. 이것을 두고 염화시중의 미소라 한다.
이 이야기는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해(以心傳心)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불교의 '선수행'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화두로 유명하다.
연은 누구의 눈길도 잡지 못하는 지저분한 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난다. 아마도 가섭은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는 연의 가르침을 알아 차리고 빙긋 웃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수면위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깨달음을 구하는 삶을 살되, 아래로는 모진 풍파를 견디며 이겨내는 연꽃의 삶. 질펀한 현장에서 힘들지만 어려움을 이겨내면 희망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보는 듯하다.
제자들에게 드높은 가르침을 위해 선택된 연꽃. 부여 궁남지는 지금 연꽃 향기로 가득하다. 출렁이는 사람들과 일렁이는 연꽃의 향연으로 갈 때마다 그 광활함에 놀라고 다양함에 강 같은 평화를 느끼고 온다.
많은 꽃들 중에서 연꽃처럼 아름답고 우아하며 순수하게 보이는 꽃이 있을까. 햇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품어내는 연꽃 사이를 거닐어 본다.
▲ 홍련 |
초록빛 연잎은 그리운 향기 내뿜으며 연꽃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 백련 |
아주 작은 바람에도 섬세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백련은 순백의 순수한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백련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속도 금방 순수함으로 가득차 버린다. 그 순백의 순수함은 맑고 투명한 기운으로 다가와 팍팍하게 굳어 있는 묵은 때를 다 털어 버리는 듯 하다. 금방, 티 없이 맑고 하얀 웃음을 슬그머니 안겨준다.
▲ 황련 |
거닐던 걸음을 멈추게 하는 황련의 그윽한 자태는 그 어떤 보석에 견둘 수 있을까. 온몸 휘감는 향기와 함께 그 멋스런 색감에 취해 눈길을 한참 머물게 한다. 소리없는 아름다움에 먼곳에 두고온 자욱한 그리움이 느껴져 마음이 울컥해진다.
▲ 가시연 |
가시연은 가시돋힌 제 한몸 다 바쳐 산고의 고통을 안고 가장 극적으로 피어오른다.
그 아픔이 나의 마음을 타고 전해져 눈물 한방울을 떨군다. 40이 넘으면 남의 아픔이 보이는 나이라 했던가. 괜시리 요즘은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난다.
온몸으로 겪은 삶의 흔적은 꽃 한송이의 아름다움으로 위로를 받는다.
▲ 가련함이 느껴지는 노오란 어리연 |
▲ 노랗게 미소짓는 물양귀비 |
장마 속에 갇혀있는 것은 분명 지겨운 일이다. 비가오는 궁남지 모습은 또 다른 아름다운 그림엽서가 되지않을까. 오늘, 그대 마음에 여름 초록으로 무성한 연꽃의 아름다움과 그 가르침을 전해주고 싶다. [넷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