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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3등신 고려 석불과 백제산성

부여 임천 대조사와 성흥산성을 가다

2009.06.06(토) | 잎싹 (이메일주소:kji206@naver.com
               	kji206@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3등신고려석불과백제산성 1  

[넷포터]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성흥산에 있는 사찰 대조사를 찾아 나섰다.
전설에 따르면 대조사는 한 스님이 큰 바위 아래서 수도 중에 관음조 한 마리가 날아와 그 바위 위에 앉자 놀라 잠을 깨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해 있어서 절 이름지었다고 한다.
절 앞마당까지 외길로 된 임도가 잘 되어있었다. 이 길은 성흥산성까지 곧장 이어져 있다.

성흥산성 아래에 있는 대조사는 마곡사의 말사로 백제 성왕 5년 (527년) 담혜가 창건하고 고려 원종 때 진전장로가 중창한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나라 절중에서 꽤 오래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3등신고려석불과백제산성 2  

주차장에서 위로 놓인 긴 돌계단을 올라서니 절 앞마당에 놓인 3층석탑과 관음보전, 석조미륵보살입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앞에 펼쳐진 아담한 풍경이 금방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관음보전 앞 3층석탑은 충남 문화재 자료 제90호로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높이 약 5.2m로 원래 탑신 없이 옥개석 3장만 남아 있었는데1975년 부근에서 탑신이 발견되어 보수 하였다 한다. 마침 평일이라 절은 숲속 바람소리만이 정적을 깨우고 있었다.

  3등신고려석불과백제산성 3  

용화보전에 들어선다.
전면 유리로 석조미륵보살을 뵐 수 있다.
참배를 한후 포근한 모습을 지닌 미륵보살을 비로써 차분히 올려다본다.

  3등신고려석불과백제산성 4  

온화한 눈빛을 지녀 지긋히 내려다보는 모습이 이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다들 관촉사 미륵보살의 부리부리한 눈매와는 달리 이곳 미륵보살은 온화하게 평을 한다.
고려시대 유해한 거대한 미륵보살은 재료가 화강암이며, 높이가 10m,둘레가 4.8m, 몸체가 거구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3등신이다.

  3등신고려석불과백제산성 5  

머리 위에는 이중의 보개를 얹은 네모난 관을 쓰고 있으며 보개의 네 모서리에는 작은 풍령이 달려있다.
관 밑으로는 머리카락이 짧게 내려져 있으며, 얼굴은 4각형으로 넓적하며, 눈은 크나 코와 입은 작아서 다소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양쪽 귀는 보통 부처의 모습처럼 길게 늘어져 모습이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은 두껍고 투박해 보이는데 옷 주름은 분명하지 않은 모습이다.
팔의 윤곽은 몸통에 붙여 옷자락으로 형태만 표현되었고, 손도 짧게 간신히 나타냈는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철재로 된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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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사에는 개와 사슴이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일이"에 방송되었을 정도로 아주 다정한 모습으로 유명하단다.
내가 갔을 땐 진도개는 한참 낮잠 삼매경에 빠져 있고 밭에 야채들을 다 뜯어먹어 지금은 잠시 묶여서 산딸나무 아래 있는 사슴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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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사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도 참 아름답다.
지나가는 객이라고 수박이랑 커피를 주셔서 툇마루에 앉아 내려다보며 먹으니 세상시름 다 잊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듯 하였다.
붉은 단풍잎과 어우러진 초록, 하얗게 소복히 내린 눈을 연상케 하는 산딸나무는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성흥산성으로 발길을 옮긴다.

  3등신고려석불과백제산성 9  

대조사에서 산성까지 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면사무소에서 오르는 길과 대조사에서 오르는 길이 중간에 합쳐진다.
단지, 올라가면서 마주치는 차가 없을까, 피하는 공터도 안보이고 내심 불안했는데 양쪽으로 아름드리 피어있는 붉은 단풍은 연신셔터를 누르게 만들더니 다행히 마주치는 차 없이 5분정도 오르니 제법 넓은 주차공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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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동성왕 23년(501년) 백제의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요충지에 돌로 쌓은 성으로 백제시대 대표 산성으로 둘레 800m 높이 3-4m의 성안에는 3곳의 우물과 군창지로 추정되는 건물지, 초석 등이 남아있다고 한다.

주차장 바로 옆엔 충혼사가 있었다. 한참을 발길이 없었는지 소박한 잡풀만이 무성할 뿐이다.
바로 계단이 시작되며 좌측으로 암벽이 산성의 위용을 표현하는 듯, 조심스레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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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정도 오르니 산성성벽 전방이 바라보인다. 쉽게 얻은 풍경이지만 그 모습은 과히 상상 이상이다.

뒤로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기다리고 있어 산성 정상으로 금새 눈을 돌린다.
산성 정상에는 500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성벽을 타고 오르던 여름 햇살도 이곳에선 잠시 숨을 쉬어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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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해돋이와 사랑나무로 유명하다고 한다.
나무아랜 그동안 서동요 촬영현장 모습까지 담겨있었다.
적막과 함께 나무아래 벤치에 앉으니 눈앞엔 부여, 논산, 강경, 장항과 전라도 익산 등 금강하루 일대가 펼쳐졌다.

높은 산을 즐겨 찾으며 느끼는 기막힌 조망을 이곳에서 느끼며 한참을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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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아름다울 것 같은 언제 찾아와도 듬직한 느티나무는 나를 반겨줄 것 같아 넉넉함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묵직함이 베어있으며 아름다운 풍취는 한 장의 그림엽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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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초록빛도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낮에 보는 풍경도 좋지만 해가 뜨는 성흥산성의 모습과 일몰은 일품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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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오르니 유금필 장군사당이 있었다.

유금필 장군은 고려시대의 무장으로 골암진에 침입한 북번들을 평정했고 연산진에 침입한 백제 장군 길환을 죽이고 임존군을 공격했으며, 조물군에서 견훤을 무찌르고 청주에서 백제 군에게 대승을 거두었고 936년 후백제를 정벌, 멸망시켰다고 한다.
사당은 한참 관리의 손실을 받지 않은 듯 무성한 잡풀만이 옛명승을 말해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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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서 잠시 머물다 성흥루에 오른다.

성흥루 현판은 김종필 친필이다.
해미읍성 여행에서 개심사 가는 길에 만난 넓은 초지가 과거 김종필 땅이었다는 소리을 들어서인지 이곳까지 그분의 손길이 닿았나 싶어 잠시 씁쓸함이 감돈다.

  3등신고려석불과백제산성 18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떠나는 여행길은 언제나 고향을 느끼며 새로움으로 충만해진다.
시간이 된다면 성흥산성에 올라 광활하게 펼쳐지는 백제의 평야를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여행의 묘미를 갖게 한다.

노천 문화재가 즐비해있는 경주처럼 부여 역시 구석구석 다니다보면 백제의 살아 숨쉬는 느낌을 여행을 하면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언제든 돌아보면 늘려져 있는 문화재를 보며 옛 백제의 영광을 다시한번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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