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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반야산 기슭 은진미륵 이야기

토속적 이미지에 고려시대 불상 대표작으로 손색없어

2009.07.14(화) | 논산포커스 (이메일주소:qzwxl@naver.com
               	qzwxl@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논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가야곡 방면으로 3km 떨어진 곳에 관촉사라는 절이 있다.
승용차로 가면 5분 정도이고, 벚꽃 길로 유명한 이 길을 걸어가도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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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당에서 한 신도가 미륵불을 바라보며 기원을 하고 있다

관촉사는 반야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흔희 “은진미륵”이라 불리우는 높이 18.21m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는 곳이다.
고려 광종 1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38년 후인 목종 9년에 완성된 이 석불은 자연의 화강석 암반위에 허리아래부분, 상체와 머리부분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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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조미륵보살입상으로 국가보물 제 2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불을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에는 구름무늬 같은 머리카락이 조각되어 있고, 머리위의 관도 정으로 다듬은 흔적을 볼수 있다.
관은 8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이중 보관을 올리고 네귀에는 청동제 방울이 달려 있다.
얼굴은 이마가 좁고 턱이 넓은 사다리꼴 만들어져 있고, 눈이 옆으로 길게 돌아갔으며, 코, 입, 귀가 모두 크다.

양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 있고, 한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있으며,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이는 아미타여래의 중품하생인(中品下生人)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국가보물 제 21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시대의 대표적 불상으로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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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촉사 입구의 일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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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왕이 있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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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포로들이 세운것으로 보이는 이승만 박사 추모비이다

일주문과 사천문을 지나 관촉사로 들어가는 길에 다리가 나오는데 다리가 끝나는 부분에 “이승만 박사 추모비”라는 비석이 하나 서있다.
1965년 이승만 대통령이 죽고 난 다음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비석에는 반공포로들이 세운 것으로 보이는 글귀가 적혀져 있다.
잠시, 역사의 한 부분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관촉사를 옆으로 끼고 계단을 따라 10여분을 오르면 반야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산책로 아주 인기가 많으며,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아련히 보이는 탑정저수지와 논산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관촉사는 논산시가 지정한 논산팔경(관촉사, 탑정호, 대둔산, 계백장군전적지, 쌍계사, 개태사, 옥녀봉, 노성산성)중 제 1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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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등은 국가보물 제 2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조미륵보상입상과 함께 만든것으로 추정되며 화사와 기둥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8각 석등의 양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석등 조성 양식의 변화를 알수있는 중요한 석등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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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례석으로 충청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53호 지정되어 있으며, 조각이 정교하고 장중한 맛이 풍기며,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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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층 석탑의 모습으로 석탑뒤로 석등과 미륵보살입상이 일자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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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촉사 경내에 있는 범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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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예전에 사용했던 해탈문이다.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79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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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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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촉사 옆으로 조성되어 있는 계단으로 계속해서 올라가면 반야산 정상에 닿을수 있다.

(관촉사 전설)

고려 광종때 사제촌의 한 노파가 고사리를 뜯으러 반야산에 갔는데 어디서인지 어린애 울음소리가 들려 가보니 큰 돌이 땅에서 솟아올라 사위에게 알리어 관가에 보고되고 왕에게 까지 상주되었다.
왕은 신하들과 의견을 나누어 이는 석불이 될 조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혜명대사에게 명해 불상을 세우게 하였다.

그러나 그 규모가 너무 커 사람의 힘으로는 세울 수 없어 고민하던 대사는 사제촌을 거닐다 동자들이 나타나 강가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큰 돌을 하나 세우고 모래로 덮은 뒤 다른 돌을 굴려서 윗부분에 올린다음 모래를 파내니 부처모형만 남는 것이었다.

이 장난을 보고 미륵을 세울 방법을 깨달은 혜명대사는 거대한 석불을 건립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이 석불이 완성되자 중국의 한 승려가 광채 나는 빛을 따라 찾아와 예불을 올렸다고 한다. 중국의 가주에도 큰 석불이 동쪽을 향해서 서 있는데 광명이 동시에 동과 서에서 서로 통하니 관촉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넷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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