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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5일장 톱 파는 할아버지

추억이 있는 풍경속으로

2011.12.21(수) 조연용(whdydtnr71@naver.com)

많은 사람들은 싸움구경, 불구경 앞에서 자연스럽게 발길을 멈춘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보다 훨씬 재미있는 구경이 너무 많다. 지금까지 내 기억에 있는 구경 중에 가장 재미있는 구경은 역시 장구경이다. 요즘처럼 백화점이나 마트가 가까이 있는 생활환경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그만 구멍가게 하나 없는 마을에서 자란 나로서는 5일 마다 서는 장이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그래서 장날만 되면 어떻게 한번 따라 나설까 싶어 장거리를 준비하는 엄마 옆에, 바싹 달라 붙던 기억이 새록새록 남아 있다.

이런 까닭에 나는 지금도 틈만 나면 시골 장터를 찾는다. 하지만 장터에서 옛 모습을 찾기란 소풍가서 보물찾기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지만, 간혹 선물처럼 재미있는 풍경들을 만날 때가 있다.

장터 한 켠 작은 파라솔 아래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계셨다. 그 앞에는 톱들이 놓여있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 앞에 쭈그리고 앉아 톱이 얼마냐고 여쭤봤다.

 “작은 건 팔천원이고 큰 건 만원여. 내가 직접 다 만들어가지고 나온겨”

오랜만에 말동무를 만나 신이 난 할아버지는 묻지 않은 말까지 술술 풀어내신다.  

   

“내가 옛날에는 목수를 했어. 목수들은 다 톱을 다룰 줄 알았어. 쓰다가 무뎌지면 날을 다시 세워 써야했거든. 톱이 잘 들어야 무슨 일이든 잘 할 수 있었지. 내가 한참 젊을 때는 서울에 일감들이 아주 많았어. 그래서 사람들이 일하러 가자고 데리러 오고 그랬지..........”

목수 일을 하던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한동안 이어진다. 할아버지는 대전에 있는 한밭체육관을 끝으로 목수 일을 그만 두셨다고 한다. 40년 넘게 목수 일을 하다가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와 톱 만드는 일을 하신단다. 철을 사다가 날을 세워서 톱날을 만든 다음 목재소에서 나무를 사다가 손잡이를 만들어 붙이신단다. 손에 난 상처들은 톱날을 만들다가 생긴 것들이라고.

이야기 도중에 할아버지 옆에 놓인 빈 컵라면 그릇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점심은 드셨냐고 여쭤봤더니 톱을 못 팔아서 컵라면으로 드셨단다. 내 예상이 불행하게도 들어맞는 순간이다. 톱 하나 사드리겠다고 싸 달라고 하니까 안사도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신다. 그래도 극구 싸 달라고 꼭 필요해서 그런다고 하니까 마지못해 톱 하나를 싸 주신다. 톱날이 날카로워서 다칠 수 있다고 꼼꼼하게도 싸 주신다.

   

톱 할아버지는 5남매 다 키워서 출가시키고 지금은 할머니와 둘이서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톱을 만들어 가지고 부여장에 나오신단다. 아무래도 사는 일이 적적해서 장날에 사람 구경도 하고, 말벗도 찾고 싶어 장에 나오시는 것 같았다.

좀처럼 손으로 만든 것들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간혹은 옛 물건들이 그립고 그 물건들을 만든 장인의 정성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디지털시대의 편리성도 좋지만 아날로그 시대에 가질 수 있었던 순수한 정신도 우리가 간직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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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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