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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위에 떠 있는 모덕사는 사찰이 아니었네

청양군 목면에 있는 모덕사을 찾아가다

2011.04.21(목) 원공(manin@dreamwiz.com)

   
▲ 모덕사가 물그림자를 만들며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다

모덕사로 가는 길에 바람이 분다. 어디서 부는 바람인지 알 수 없으나 봄 길을 걸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바람 부는 곳을 따라 들어가니 넒은 저수지가 기다리고 있다. 푸른 물결이 춤을 추듯 넘실대고 새들은 물위에 떠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대충 보아 휴식을 하는 모양이다. 길을 따라 쭉 펼쳐진 저수지 끝자락엔 길 다란 뚝 방이 있고 그 너머로 기와집 몇 채가 보인다. 언뜻 보아 일반 농가는 아니고 양반이 살던 고택 같다.

저수지를 앞에 놓고 길에서 보아하니 마치 기와집이 물위에 떠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앞에는 물이 가득 담긴 저수지가 있고 뒤로는 큰 소나무가 숲을 이룬 동산이 있다. 길을 가다가 어디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저수지 입구에 모덕사라는 표지판이 있었으나 눈으로 들어오는 풍경은 사찰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보통 절은 산중 깊은 곳에 있으나 모덕사는 일반 사람들이 사는 민가 주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이라기 보다는 일반 양반집이라 여기기가 십상이다. 모덕사 입구에 이르러 안내판을 보자 혼잡했던 생각이 깨끗이 정리가 된다. 모덕사는 사찰이 아니다.

   
▲ 생전의 면암 선생이 쓰시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
   
▲ 면암선생의 위패가 모셔있는 모덕사

모덕사는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1833∼1906)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우로 1914년에 건립되었으며,  고종황제가 내린 글 가운데 “면암의 덕을 흠모한다(艱虞孔棘慕卿宿德)”라는 구절에서 “모(慕)”자와 “덕(德)”자를 취한 것이다.

최익현선생은 이항노의 제자로 문학과 도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철종 6년(1855)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현감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며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리고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또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고,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 끝내 순국하였다"

모덕사는 청양군 목면 송암리에 자리한 면암 최익현(1833~1906) 선생의 사당으로 육천여점의 서책과 서찰이 보존된 유물관과 고택이 자리 잡고 있으며, 문화재 자료 152호로 지정된 역사적 사적지다. 

   
▲ 모덕사 옆으로 흐르는 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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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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