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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의 원조 온주아문

아산 읍내동 온주아문과 동헌을 돌아보며

2023.08.02(수) 23:02:15아산지기(isknet@hanmail.net)

오늘은 아산시 온양6동 읍내1통에 자리잡고 있는
온주아문과 동헌을 둘러보았습니다.
현재 유형문화재 제 1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온주아문으로 들어가기전 좌측편에 아담한 주차장이
담장을 따라 길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온주아문은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문루입니다.
고종임금시절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면서 온양군의 관아를
개축하면서 이 문루도 함께 개축을 하였다고 압니다.
온주아문이라는 명칭은 신라 663년 문무왕3년에 이곳의
이름을 온주라 하였는데 그이름을 따서 온주아문이라 한것 같습니다.
온주아문은 2층 형식으로 만들어 졌는데 아래층은 통로로 사용하고
위층은 누마루로 이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다듬은 장대석 한벌을 깔아 만든 기단위에 4각형의 기초석을 갖춘
높이 1.5m의 주형 초석을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하였습니다.
마루의 4면에는 계자 난간을 돌렸고 아래층 기둥에는 화려한 초반을 한 낙양을 붙였습니다. 아래층에는 화재를 대비하여 화재대비방제수레를
설치 해 놓았습니다. 요즘 말하는 소방차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온주아문 우측 담장아래에는 비석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두 11기의 비석이 있는데 흔히 사또라고 불리던 이곳에 재임하던 군수들과 충청도관찰사들의 선정을 기념하고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송덕비입니다.

동헌은 아문에서 약50m 북쪽에 서 있습니다.
정면 6칸 측면 2칸 도합 12칸의 기와 건물로 홑처마 팔작지붕입니다
조선시대 온양군 동헌으로 쓰이다가 1928년부터 일제의 주재소, 해방 후에는 파출소로, 1986년 시 승격에 따라 1988년 까지 온주동 동사무소로 2년간 사용되다가 1993년에 수리 복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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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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