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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멋이 살아 있는 명재고택과 노성면 교촌리 풍경

2020.07.29(수) 10:58:34네잎클로버(venusmi8@hanmail.net)


 
지난 주말, 논산 가볼만한 곳으로 명재고택을 찾았습니다. 명재고택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4에 위치해 있는데요, 명재고택으로 들어서는 마을 길목에서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노성 궐리사가 보여 잠시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곳에는 사색하며 걷기 좋은 역사탐방코스로 노성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는 노성 궐리사, 명재고택, 노성향교를 소개합니다.
 

 
1.공자를 모신 사당, 노성궐리사

교촌리 마을 곳곳에 화사하게 피어난 여름꽃들이 어서 오라는 듯 반겨줍니다. 궐리사는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 '궐리촌'이라는 데서 유래된 명칭으로 공자의 유상을 봉안한 영당이 자리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빛바랜 홍살문을 지나 야트막한 노성산 자락 아래 자리한 궐리사 경내로 들어가 봅니다. 노성궐리사 앞에 도착하니 기념물 보호를 위해 외삼문이 굳게 잠겨 있었는데요, 지금의 건물은 중건 당시보다 규모가 축소된 것으로 경내에는 강당인 현송당·내삼문·사우인 궐리사·모성재·관리사·문간채 등이 있습니다. 
  
노성궐리사(충남기념물 제20호)
▲노성궐리사(충남기념물 제20호)
 
노성궐리사는 1978년 12월 3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687년(숙종 13), 우암 송시열 선생이 궐리사 건립을 추진하였지만, 왕세자 책봉(뒷날의 경종)에 반대하는 상소로 인하여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1716년(숙종 42년) 권상하, 김만준 등 송시열 선생의 제자들이 노성산 궐리촌에 궐리사를 건립하고 이듬해에 공자 영정을 봉안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노성 궐리사를 비롯해 강릉, 제천, 오산 등 4군데에 궐리사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오산궐리사와 논산의 노성궐리사만이 남아 있으며, 노성궐리사는 중수를 거듭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1791년(정조 15년)에는 송조 5현의 영정을 봉안하였고, 1805년(순조 5년) 관찰사 박윤수 등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주자상을 봉안하였습니다. 
   
노성궐리사 공자상
▲노성궐리사 공자상
 
노성궐리사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길 35
  

 
2.선비의 기품이 느껴지는 명재고택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마을 지근거리에 노성 궐리사, 윤증 선생 고택, 노성향교가 있습니다.
 
공자의 영정을 모신 노성궐리사에서 조선시대 대표적 양반 가옥이 있는 명재고택 쪽으로 천천히 걸어보았습니다. 초록빛 가득한 시골길에는 여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 보는 즐거움과 걷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명재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190호)
▲명재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190호)
 
마을길로 조금 올라가니, 정갈하고 기품 있어 보이는 명재고택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먼저, 명재고택의 역사와 함께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언덕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현재 명재고택에는 후손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어 조용히 고택 주변을 둘러보았는데요, 후원 쪽에는 정갈하게 놓인 수백 개의 항아리들과 400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 푸른 소나무숲이 고택을 포근하게 감싸며 고즈넉한 풍광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 소론의 지도자였던 명재 윤증 선생의 고택입니다. 윤증 선생(1629-171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명재'이며 본관은 '파평'입니다. 선생은 성리학을 공부하였으며, 특히 예학에 밝은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윤증 선생은 4명의 임금이 18번이나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거절할 만큼 대쪽 같은 성품에 청빈한 삶을 사셨다고 하는데요, 윤증 선생의 호를 따 불리고 있는 명재고택은 윤증 선생 생전(1709)에 유봉리 작은 초가에서 지냈던 스승을 위해 제자들이 뜻을 모아 지은 고택입니다.
 
하지만 모든 고위 관직을 사양할 만큼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사셨던 선생은 제자들이나 외부 손님을 만날 때 말고는 고택에 거주하지 않았고, 이러한 이유로 명재고택(明齋故宅)은 윤증 선생과 인연 있는 옛집이라 하여 '옛 고(古)'자가 아닌 '인연 고(故)'자를 쓰고 있습니다.
 

 

 
명재고택은 백제시대 노성산성이 있는 노성산을 배산으로 노성향교와 나란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고택 초입 부근에는 윤증 선생의 모친인 공주이씨의 순절을 기리는 정려각이 있습니다. 산 아래 높은 기단을 만들어 그 위에 팔작지붕의 사랑채와 행랑채를 정면으로 배치하였고, 사랑채 앞에는 축대와 우물·연못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명재고택은 조선시대 호서지방의 대표적인 양반 가옥으로서 전통적인 한옥의 모델로 꼽히고 있는데요,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다양한 나무들과 식물들이 심어져 있어 조선시대 정원 조경술의 아름다움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명재 윤증고택의 전경
▲명재 윤증고택의 전경
  
명재고택은 사랑채 주변으로 사대부 집의 상징인 솟을대문은커녕 경계를 나누는 담장 하나 없이 마을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모습입니다.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 또한 소박하고 검소한 가문의 성품을 보여주는 평범한 문인데요, 조선 중기 노론에 맞서 격식과 관습에서 벗어나 세상과 거리낌없이 마주하고자 했던 윤증 선생의 고고한 철학이 곳곳에 담겨 있는 듯보였습니다. 
   
명재고택 연지
▲명재고택 연지
 
명재고택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3.배롱나무꽃이 곱게 피어난 노성향교
 
명재고택 왼쪽에는 조선시대 관학 교육기관인 향교가 사대부 집과 맞붙어 있는데요, 노성향교는 본래 노성면 송당리 월명곡 근처(현 노성초등학교)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노성향교는 은진향교와 비슷한 1380년(고려 우왕 6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을 겪은 후 1800여 년경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노성향교(충남기념물 제118호)
▲노성향교(충남기념물 제118호)
 
노성향교의 창건과 이건 연대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명륜당 현판에 의하면 숭정 4년(1631)에 현감이 문묘를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노성향교도 문이 잠겨 있어 있어 담장 너머에서 잠시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외삼문 안쪽에는 일반적인 향교의 배치법으로 앞면에는 유생들의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자리해 있고, 뒷면에는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배치하였습니다. 노성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4성위를 모셨으며, 동무에는 송조 1현(정이)과 동국 9현을, 서무에 송조 1현(주희)과 동국 9현 등 모두 5성과 20현의 25위를 모셨습니다. 
 

  
  
노성향교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4(교촌리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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