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 전시
▲ 최병소, 무제, 2012
커다란 규모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사로잡힌 채 매료됐다. 그 규모만큼이나 울림이 컸던 작품이었다. 추상미술의 특성상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무언의 메시지가 눈과 가슴으로 팍! 들어왔다.
▲ 윤명로, 익명의 땅 91630, 1991
1층 감상을 마치고 계단을 올라가던 중 마주한 한 작품! 일본의 유명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소설 표지로 쓰인 익숙한 작품이 걸려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그림이었다(정말 반가웠다!). 여러 각도에서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 2층에 다다랐다. 걸음마를 뗀 이후로, 내 생에 그렇게 느렸던 층계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 이우환, 선으로부터, 1978
2층 역시 내 감각들을 사로잡는 작품들이 많았다. 생각지 못한 소재의 이용이 재미있었다. 이번 <사이의 경계>展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이강소 작가의 실크스크린 3점과 최병소 작가의 1973년 작 <무제(untitled)>가 원작으로서 처음 전시됐다(안내 팸플릿 참조). 중학교 미술 시간에 배운 실크스크린 기법에 작가의 특별한 표현이 조화로웠던 ‘경계의 표현’을 직접 보았다.
김구림 작가의 작품 <걸레>는, 영상화된 작품으로 더욱 뇌리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많은 생각에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사이’와 ‘경계’에 담겨있는 동양철학에 감탄했다.
1970년대 한국의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있기에, 작품에 담긴 뜻들이 ‘여유’나 ‘평화’ 등의 느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라가 전체적으로 어려웠던 상황에 예술가들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가난하고 각박한 환경에서 온 몸으로 저항하고 목소리를 낸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한쪽에 준비돼 있는 윤명로 작가의 다큐를 보는 것을 끝으로, 나의 작품 감상은 끝났다. 기념품 가게까지 구경하고 갤러리를 빠져나오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였다. 여전히 날은 따뜻했고, 풍부해진 영감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좋은 놀이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전시는 봄이 한창인 5월 6일까지다. 천안시외터미널 바로 옆에 위치한 뛰어난 접근성도 놀이터 선정 이유! 이 봄이 끝나기 전에 한번쯤 그곳으로 놀러가는 것을 적극 권한다.